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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 부모 수행 및 교육

학원을 끊어도 반항하는 사춘기, 무례한 말 뒤에 숨겨진 성장통 [부모 수행록 10]

by 행정술사 유니 2026. 5. 17.

"저는 공부 공부만 중요시하는 극성 엄마가 아닙니다.
아이가 학업으로 스트레스받지 않게 하려고 이미 영어와 수학 학원도 모두 그만두게 했습니다. 대단한 성적을 바란 적도 없습니다. 제가 원하는 건 그저 사람으로서 갖춰야 할 '기본 인성과 예의'뿐입니다. 그런데 왜 아이는 가장 가까운 엄마에게 예의 없는 행동을 하고, 가슴에 비수를 꽂는 상처 주는 말을 내뱉는 걸까요? 솔직히 너무 속상하고 괴롭습니다."

◎ 원인 진단의 오류: 학업 스트레스를 걷어내도 남는 것들

행정 현장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일 중 하나가 '오판으로 인한 잘못된 처방'입니다. 민원의 원인을 섣부르게 짐작하여 엉뚱한 대책을 내놓으면 갈등은 더 깊어지기 마련입니다. 최근 거실에서 아들과 마주할 때마다 저 역시 이 행정적 과오를 범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아이의 거친 말투와 날 선 언어가 당연히 '공부 압박과 스트레스'에서 오는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래서 큰 결단을 내렸습니다. 영수 학원을 모두 정리하고 아이의 어깨 위에 놓인 짐을 먼저 내려놓아 주었습니다. 이미 지난 부모 수행록 4 아이의 '성적'보다 중요한 '관계'의 적자, 부모 성찰 일기] 편에서 깊이 고백했듯, 제게는 아이의 등수보다 아이와 마주 앉아 나누는 따뜻한 온기가 훨씬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부모로서 이 정도의 배려와 큰 규제 완화를 시행했다면, 아이도 내 진심을 알아주고 최소한의 '예의'로 보답할 것이라 믿었습니다. 그것이 인간적인 상식이고 인지상정이니까요.

하지만 학원을 끊어도 아들의 퉁명스러운 태도와 가시 돋친 단어들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엄마가 뭘 알아요?", "신경 쓰지 마세요"라며 선을 넘는 무례함 앞에 제 안의 부모로서의 권위와 인간적인 서글픔이 동시에 요동쳤습니다. '공부 스트레스도 주지 않는데 도대체 내가 어디까지 허용하고 맞춰주어야 하는가?'라는 깊은 회의감이 밀려왔습니다.

식탁에 앉아 아들의 거친 한마디에 속상한 표정으로 마음을 추스르는 엄마의 모습

■ 부모가 마주한 '허용의 경계선' 재확정

• 1차 오판 : 학원을 끊으면 아이의 정서가 즉시 안정될 것이다 (기대의 오류)

• 본질적 인식 : 학업 외에도 사춘기 뇌과학적 성장통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현실의 수용)

◎ 현장 리포트: 예의 없는 행동 너머의 '비명'을 들은 날

사무실 책상에 앉아 복잡한 민원 조정 합의서를 검토하다가 문득 깨달음이 스쳤습니다. 직전 글인 사춘기 스마트폰과 뇌과학: 부모의 불안을 다스리는 위험 관리법 [부모 수행록 9]를 쓰면서 사춘기 뇌의 취약성을 마음 깊이 공부해 두고서도, 막상 아이의 무례한 태도 앞에서는 제 이성이 먼저 흔들리곤 했습니다. 민원인이 거친 언어로 소리를 지를 때, 그 '태도'만 문제 삼아 징계하거나 쫓아내면 갈등은 영원히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 무례함 이면에 숨겨진 절박한 요구를 읽어내야 비로소 상생의 길이 열립니다. 아들의 예의 없는 행동도 어쩌면 도덕성의 결여가 아니라, 통제 불능의 호르몬 폭풍 속에서 터져 나오는 '정서적 SOS 신호'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춘기 아이들의 두뇌는 전두엽의 전면적인 공사가 일어나는 중입니다. 이 시기에는 감정의 과부하는 쉽게 걸리지만, 이를 정제된 언어로 다듬어 표현하는 능력은 현저히 떨어집니다. 학원을 그만두어 공부 압박은 사라졌을지 몰라도, 아이는 여전히 자기 내면의 정서적 지진을 감당해 내느라 필사적인 상태였던 것입니다. 엄마에게 뱉은 상처 주는 말들은 엄마가 미워서가 아니라, '지금 제 마음이 너무 힘들고 조절이 안 돼요'라는 서툰 비명이었음을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표면적인 '싸가지'에만 분노하느라, 그 너머에서 신음하는 자생력의 서툰 몸부림을 보지 못한 제 안목의 부실이었습니다.

"감정은 무제한 허용하되,
상처 주는 '방식'에는 단호한 안전망이 되어야 합니다."

◎ 부모라는 버팀목이 지켜내야 할 최종 방어선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까지 참고 어디까지 허용해야 할까요? 공부를 강요하지 않는 부모일수록 이 선을 잡기가 더 어렵습니다. 저는 행정의 기본 원칙에서 답을 찾았습니다. 주민의 자유(정서)는 최대한 보장하되,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예의 없는 행동)는 공공의 질서를 위해 단호히 제한하는 것입니다.

아이가 짜증 섞인 투로 "몰라요"라고 하거나 대화를 거부할 때는, 인성을 훈계하기보다 대화의 관로를 잠시 차단하고 물러서 주는 것이 맞습니다. 대화할 에너지가 바닥났다는 신호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엄마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거나 비수가 되는 상처 주는 말을 내뱉을 때는 감정적으로 맞받아치는 대신, 아이의 흥분이 가라앉은 고요한 시간에 차분하게 경계선을 그어주어야 합니다.

"네가 지금 마음이 답답하고 혼란스러운 것은 얼마든지 이해하고 기다려줄 수 있어. 하지만 아무리 화가 나도 엄마에게 그런 무례한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결코 허용할 수 없다"라고 위엄 있게 선언하는 것입니다.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부모로서 지켜야 할 '최종 방어선'을 명확히 명시해 주는 일입니다.

거실 창밖을 바라보며 자녀를 향한 신뢰와 단호함을 다짐하는 공무원 엄마

◎ 묵묵히 곁을 지키는 부모의 품격

아이가 공부보다 바른 인성을 갖추기를 바라는 교육 철학은 눈앞의 성적에 일희일비하는 백 가지 기술보다 훨씬 위대합니다. 학원까지 포기하며 아이의 존재 자체를 지켜주려 했던 그 결단은 결코 배신당하지 않습니다. 지금 당장은 아들이 그 고마움을 모른 채 거친 가시를 세울지라도, 아이의 마음 깊은 곳에는 '우리 엄마는 내 성적이 아니라 내 존재를 사랑해 준 사람'이라는 거대한 안전기지가 굳건히 뿌리내리고 있습니다.

오늘 밤도 아이가 남긴 말의 상처를 안고 홀로 거실 불을 끄는 부모님들이 계신다면, 스스로를 자책하거나 조급해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가시 돋친 선인장이 거친 사막을 견디기 위해 가시를 세우듯, 우리 아이도 어른이 되는 척박한 과정을 서툴게 견디는 중입니다. 그 서툰 껍질에 상처받지 않고 속 알맹이가 단단해질 때까지 묵묵히 자리를 지켜주는 인내, 그것이 바로 사춘기라는 거친 파도를 함께 넘는 부모의 가장 아름다운 품격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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