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넘게 공무원 생활을 하며 업무상 수많은 민원 전화를 받았습니다. 민원인의 날 바짝 선 항의 전화도, 삼국지의 조조 같은 상사의 까다로운 업무 지시도 담담하게 받아내던 저였습니다. 하지만 유독 제 심장을 바닥까지 떨어뜨리는 전화가 있습니다. 바로 아들의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걸려오는 전화입니다. 스마트폰 화면에 뜨는 '아들 담임 선생님'이라는 글자를 보는 순간, 심장이 멈추고 온몸의 피가 차갑게 식는 기분이 듭니다. 결코 과장이 아닙니다. 좋지 않은 소식의 전화벨 소리는 감각적으로 날카롭게 들립니다. 오늘은 저처럼 학교의 호출에 가슴이 철렁했을 부모님들을 위해, 그 당혹스러운 순간을 어떻게 지나쳐야 할지 저의 뼈아픈 경험과 오늘 주차장에서 얻은 깨달음을 담아 정리해 보려 합니다.
첫 번째, '죄인'이 되기 전에 '관찰자'가 되십시오
선생님께 전화가 오면 본능적으로 죄인이 된 기분을 느낍니다. 특히 아들이 친구의 신체 부위를 만지고 놀렸다거나, 학교 기물을 파손했다는 충격적인 내용을 들으면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어 집니다. "내가 아들을 잘못 키웠나?", "내 직업이 공무원인데, 남들이 알면 뭐라고 할까?" 하는 수치심이 밀려오죠. 하지만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리지 않는 것입니다.
선생님의 말씀을 끊지 말고 끝까지 경청하십시오. 그것이 팩트인지, 아니면 선생님의 주관적인 판단이 섞인 것인지 냉철하게 구분해야 합니다. 저는 아들이 욕설을 했다는 전화를 받을 때마다 '순응과 복종'이 체질이었던 저의 온순했던 학창 시절을 떠올리며 괴로워했습니다. 하지만 부모의 과거와 아이의 현재는 별개입니다. 쉽지 않겠지만, 이제 청소년이 된 아들과 나를 분리하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합니다. 한없이 자책만 하지 말고, 상황을 정확히 파악해야 합니다.
두 번째, 타인을 비난하기 전 나의 뒷모습을 투영해 보십시오
오늘 오후 5시, 평소처럼 뒷산에 가려다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한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주차 스티커가 없는 외부 차량을 통제하는 관리원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제 연배의 여성이 있었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혀를 찼지만, 제 눈에 들어온 건 뒷좌석에서 고개를 푹 숙인 채 주눅 들어 있는 초등학생 남자아이였습니다. "세상에, 자식 앞에서 도대체 무슨 본을 보이는 걸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습니다. 자식이 보고 있다는 생각은 잊은 채 본인의 분함만을 주장하고 있었습니다. 참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내 저는 멈춰 섰습니다. 나는 과연 아들에게 어떤 뒷모습을 보였는가. 주말 내내 에너지를 회복한답시고 소파에 누워 뒹굴거리던 모습, 퇴근 후 피곤하다는 핑계로 배달 음식으로 아들의 저녁을 대충 때우던 나의 모습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습니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라고 있었던 격입니다. 아이의 문제는 결국 나의 습관이 은연중에 투영된 결과일지도 모릅니다. 학교에서 걸려온 전화 속 아들의 모습에서 나의 그림자를 발견하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수치심을 버리고, 있는 그대로의 아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세 번째, 아이의 '말'보다 '마음의 허기'를 먼저 읽으십시오

전화를 끊고 나면 당장이라도 아들을 불러다 앉히고 핏대를 높이며 싸우고 싶어 집니다. "너 도대체 왜 그러니?", "엄마 망신시키려고 작정했어?"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오르죠. 하지만 법륜 스님의 가르침을 빌리자면, 아이가 저항하는 데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습니다. 아이도 지금 자신의 마음을 어쩌지 못해 괴로워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이를 부처님이다 생각하고, 부처님이 저렇게 행동하는 것은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마음을 고쳐먹습니다.
아이가 집에 돌아왔을 때, 다그치기 전에 먼저 물어봐 주세요. "오늘 선생님께 전화받았어. 너도 마음이 참 복잡하겠구나."라고요. 아이를 나의 분신처럼 생각해서 통제하려 들면 갈등은 깊어질 뿐입니다. 아이는 이제 어엿한 15살, 독립적인 우주입니다. 그 우주 안에서 어떤 폭풍이 몰아치고 있는지 부모는 비난이 아닌 '공감'의 안경을 쓰고 바라봐야 합니다. 부모 노릇하기가 이렇게 힘이 듭니다. 부모가 되어야 비로소 어른이 될 수 있다는 말을 공감하게 됩니다.
네 번째, 스마트폰 뒤에 숨겨진 아이의 결핍을 보십시오
우리는 아들이 스마트폰 숏츠에 빠져 뇌가 마비되는 것을 걱정하지만, 정작 아이가 왜 그 가짜 즐거움에 매달리는지는 보려 하지 않습니다. 혹시 엄마가 20년 차 공무원의 갑갑함으로 아이를 옭아매고 있지는 않았나요? 저 역시 집요하게 스마트폰을 압수하며 그것이 아이를 위한 길이라 믿었습니다. 하지만 아이에게는 스마트폰보다 엄마와의 따뜻한 밥 한 끼, 비난 없는 대화 한 마디가 더 절실했을지도 모릅니다. 눈에 보이는 모습만 보고, 감추어진 마음을 못 읽지는 않았는지요? 엄마의 통제권 안에 들어오지 않는 아이를 보며, 어른의 권위를 함부로 행사하려고 하지는 않았는지요?
훈육은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 기반에는 '신뢰'가 있어야 합니다. 학교의 호출은 아이를 혼낼 기회가 아니라, 아이의 결핍이 무엇인지 부모가 알아챌 수 있는 '신호탄'입니다. 아이의 잘못된 행동을 교정하기 전에, 부모인 내가 먼저 말 없는 행동으로 삶의 본을 보이고 있는지 점검하는 것이 매뉴얼의 핵심입니다.
마치며: 결국 부모는 기다려주는 사람입니다
전화도 없이 아직 집에 들어오지 않은 아들을 기다리며 저는 다시 한번 마음을 고쳐먹습니다. 나를 아끼는 것이 자식을 사랑하는 길임을 깨닫습니다. 오늘 제가 누린 사소한 사치들에 감사하며, 내가 원하는 것을 살 수 있는 돈이 있음에 감사하고, 황사가 기승을 부리는데 호흡기에 아무런 문제 없이 건강한 나 자신에게 감사합니다. 감사의 마음을 채우고, 현관문을 열고 들어올 아들에게 화를 쏟아내지 않기로 다짐합니다.
학교에서 전화가 왔습니까?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습니까? 자존심이 상합니까? 괜찮습니다. 이것은 내 아이가 성장하고 있다는 신호이며, 내가 부모로서 한 뼘 더 성숙해질 수 있는 기회입니다. 밤이 깊으면 새벽이 오듯, 오늘의 이 괴로움도 결국 찬란한 축복으로 돌아올 것을 믿습니다. 우리는 그저 선을 긋고, 나만의 아름다움 속에서 아이를 묵묵히 기다려주면 됩니다. 그것이 세상의 모든 '중2 엄마'들이 가져야 할 단단한 마음가짐입니다.